다가올 계절을 대비라도 하는 듯 날씨가 변덕스럽다. 유월은 쨍쨍 뜨는 해와 쏟아지는 비가 공존하는 계절이다. 이맘때쯤의 어린 나는 일기장 속 해와 우산 중 어느 것을 동그라미로 표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영국의 비평가 존 러스킨은 “햇볕은 감미롭고, 비는 상쾌하고, 바람은 힘을 돋우며, 눈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수없이 날씨가 바뀌는 이곳, 디뮤지엄으로 발걸음을 향해 보자.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는 날씨를 주제로 독창적인 미감을 보여주는 사진부터 촉각과 청각을 극대화한 설치작품까지 작가들의 다양한 관점을 소개한다. 날씨는 그리스 신화의 천둥번개, 19세기 영국 소설 속 폭풍우, 대중가요 가사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거치며 오랫동안 삶을 이루는 대부분의 영역에서 필연적 원동력이 되어 왔다. 전시는 총 세 개의 챕터 “날씨가 말을 걸다”, “날씨와 대화하다”, “날씨를 기억하다”로 크게 나뉘어 전개된다. 기후는 돌과 나무가 지구에 있는 것처럼 당연히 존재하며,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은 인지하기 어렵다.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라는 전시명과 이어지는 첫 번째 챕터, “날씨가 말을 걸다”에서는 날씨에 관한 일반적인 관념을 다채로운 시선으로 담아낸다. “날씨가 말을 걸다”는 우리가 무심하게 대했던 일상을 재발견하게끔 만들어준다. 전시는 크리스 프레이저의 설치작업 로 시작된다. 사람들이 오갈 때마다 여닫히는 회전문은 공간의 분위기와 구조를 극적으로 변화시킨다.
‘햇살’ 섹션은 따뜻한 태양아래 나른하고 행복한 날을 기록한 마크 보스윅과 올리비아 비의 작품, 유쾌한 시선으로 해변을 담아낸 마틴 파의 사진으로 이루어졌다. 궂은 날씨로 인식되는 날씨의 요소를 서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눈, 비’섹션에서는 요시노리 미즈타니가 구현한 초현실적인 이미지, 북극의 삶을 동화처럼 기록한 예브게니아 아부게바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 ‘어둠’섹션은 짙은 어둠과 아련한 밤의 서사를 탐구하는 작업들이 전시된다.
사라져버리는 대상을 붙잡아 목화 솜으로 빚어낸 노동식의 작품을 따라 계단을 오르면, 두 번째 챕터 “날씨와 대화하다”로 이어진다. “날씨와 대화하다”에서는 시각, 촉각, 청각 기반의 작품들을 입체적으로 경험하며, 인공적인 색이 아닌 자연현상 속에서 발견한 푸름을 소개한다. 이은선은 1년 넘게 촬영한 하늘 사진에서 채집된 다양한 색을 담은 작품을 선보인다. 관객은 설치물을 보고 각자가 기억하는 하늘과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안개’섹션에서는 물리적으로 구현된 안개를 경험해볼 수 있으며, 갑웍스의 다채널 영상 설치와 베른나우트 스밀데의 시리즈가 시적 오브제로서 구름과 안개를 다룬다. 하늘이 시각, 안개가 촉각을 열어줬다면 ‘빗소리’ 섹션은 청각에 집중한다. 사운드 디렉터 홍초선과 라온 레코드가 채집한 빗소리를 들으며 관객은 30m에 이르는 전시장의 어두운 복도를 따라 걷는 체험을 하게 된다.
세 번째 챕터 “날씨를 기억하다”에서는 각자의 기억 속 날씨가 어떠한 감정과 형태로 자리 잡는지 관찰한다. 주변의 사물들에 빛, 바람을 투영시켜 풍경을 기록하는 울리히 포글의 설치부터, 매일 촬영한 사진에 같은 날의 세계적 이슈나 개인적인 사건들을 손글씨로 기록해 병치시키는 야리 실로마키, 화면에 이질적인 요소들을 중첩해 초현실주의적 장면을 연출하는 김강희 등 다섯 작가의 개성에 따라 기록된 날씨를 엿볼 수 있다. 뱅글뱅글 한 자리만 도는 일상에서 나를 즐겁게 할 변화는 무엇이 있을까? 몰랐던 지름길이나 두 개 들어있는 알사탕은 그야말로 소소한 행복이다. 어제와는 다르게 드라마틱한 날씨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매일의 날씨에 대해 색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관객은 내면 어딘가에 자리한 기억과 잊고 있던 감정을 새로이 꺼내보며, 익숙한 일상의 순간이 지닌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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